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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안내

신암동

신암동(新岩洞)의유래

신암동은 예부터 '한골'이라는 자연부락으로 불리어졌는데, 골이 깊은 계곡 대곡리(大谷理)라 불린 것에서 명칭이 '한골'로 되었다고 한다. 이후 새로 생긴 강 새내, 즉 신천이 흐르게 되었는데 그 아래 바위가 많은 곳이라 하여 '신암동'이라 불리어진다. 처음에는 동산새태, 새태마을(혹은 새터마실), 신기동이라 했다. 현 신암1동 행정복지센터 부근이 중심이 되며, 새태마실이라 불리운 것은 그 아래쪽에 많은 마을이 들어서게 되면서 이를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부르게 되었다.

쇠머리

1975.10. 1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신암2동 일부(신암로 북편)가 대현3동으로 되기 이전 현재의 대현3동 행정복지센터 뒤편 일대 경사지의 형상이 소의 모습을 닮았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소머리 부분의 윤곽이 뚜렷하여 쇠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암동 동편 - 동촌, 안심, 공산 주민들이 대구시내에 들어 오려면 이 곳 쇠머리 마을은 시내 진입 관문으로 그 기능을 했다.)

감나무촌

이후 대구현(大丘縣)은 1419년 조선 세종 원년에 대구군(大丘郡)으로, 1466년 세조 12년에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로 승격되었습니다. 현재와 같은 ‘대구(大邱)’라는 한자 명칭이 사용된 것은 정조 2년인 1778년부터입니다. 1910년에는 대구부(大邱府)로 개칭되었으며, 1949년 8월 15일 대구시(大邱市)로, 1981년 7월 1일 대구직할시(大邱直轄市)로 승격되었고, 1995년 1월 1일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쌍둥이못

우리 지역은 1938년 대구부 동부출장소에서 시작하여, 1963년 1월 1일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동부출장소가 대구시 동구로 승격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페이지 담당자
최종 수정일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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