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정유산
- 소재지동구 지묘동 526일대
소개
이곳은 고려 태조때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신숭겸 장군은 태봉의 기장으로 있으면서 배현경 등과 궁예를 내몰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장군은 그 뒤에 대장군이 되어 927년(태조 10)에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려고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대구 공산(公山)에서 싸웠으나 후백제군에게 대패하였다. 이 싸움에서 장군은 왕건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왕으로 변장하여 김락(金樂)장군과 같이 싸우다 왕건을 대신해서 전사하였으며, 이틈을 탄 왕건은 장졸로 변장하여 적의 포위망을 뚫고 단신 탈출한다. 태조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광해주(지금의 춘천)에 예장하고, 전사한 자리인 이곳에는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 하는 한편 일품전지 삼백묘를 하사하여 이를 수호하게 하였다. 그 후 지묘사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폐사되었으나 1607년(선조 40)에 경상도 관찰사 류영순이 폐사된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表忠祠), 표충단, 충열비를 건립하여 공의 혼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였다. 지금도 표충사 앞쪽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라지는 고개를 왕건의 정예군이 크게 패하였던 고개라 하여 파군(破軍)재라 부르고, 파군재 남쪽 산기슭의 봉무정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왕건이 탈출하여 잠시 앉았다고 해서 독좌(獨坐)암이라 부르며 표충사의 뒷산은 왕산(王山)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지명 외에도 대구에는 이싸움에서 유래된 안심, 해안, 반야월 등의 많은 지명이 남아 있어 당시 격전지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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