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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암동(新岩洞)의유래

신암동은 예부터 '한골'이라는 자연부락으로 불리어졌는데, 골이 깊은 계곡 대곡리(大谷理)라 불린 것에서 명칭이 '한골'로 되었다고 한다. 이후 새로 생긴 강 새내, 즉 신천이 흐르게 되었는데 그 아래 바위가 많은 곳이라 하여 '신암동'이라 불리어진다. 처음에는 동산새태, 새태마을(혹은 새터마실), 신기동이라 했다. 현 신암1동 행정복지센터 부근이 중심이 되며, 새태마실이라 불리운 것은 그 아래쪽에 많은 마을이 들어서게 되면서 이를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부르게 되었다.

  • 쇠머리
    • 1975.10. 1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신암2동 일부(신암로 북편)가 대현3동으로 되기 이전 현재의 대현3동 행정복지센터 뒤편 일대 경사지의 형상이 소의 모습을 닮았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소머리 부분의 윤곽이 뚜렷하여 쇠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암동 동편 - 동촌, 안심, 공산 주민들이 대구시내에 들어 오려면 이 곳 쇠머리 마을은 시내 진입 관문으로 그 기능을 했다.)
  • 감나무촌
    • 6.25 전쟁 이후 대구시내 일원(칠성시장 주변)에는 피난민들의 판자촌이 밀집하여 시에서 신암2동 감밭(현재의 강남아파트) 외 몇개소를 피난민 거주지역 지역으로 지어, 시내 곳곳에 산재한 난민들을 시 지정 장소로 이주시켰다. 당시 강남아파트 일대는 야산을 개간하여 과수원으로 감나무를 많이 심었으며 동신초등학교 서편 경사지는 복숭아나무를 재배하였다. 대구시의 계획에 의거 시내 중심지의 피난민들이 감밭으로 이주함에 따라 자연부락이 형성되었고 이 마을을 감나무촌으로 부르게 되었다.
  • 쌍둥이못
    • 송라지(현재 동신초등학교와 송라아파트 부지 전체가 하나의 못)가 경부선 철도의 현 위치 이전에 따라 큰 못이 두 개로 나누어져 이를 쌍둥이 못으로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없음)
  • 기와골
    • 현재 신암2동 행정복지센터 부지 일대는 본 건물 신축 이전까지 기와를 굽는 기와공장이었고 이를 기와굴이라고 불렀다.

  • 자료담당부서 기획예산과 김지수
  • 전화번호053-662-2115
  • 최종수정일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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